교육자 길을 걸으며 교류와 참여를 꾀하다
1970년대 각 대학에서 디자인과를 신설하면서 산업현장에 있던 디자이너들이 교육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고, 권명광도 1973년 홍익대학교 시각디자인과 교수로 부임하였다. 디자인 교육 분야에서 후학을 양성하면서 디자인 자문과 심사, 디자인 단체 설립, 프로젝트 진행 및 기고를 병행하며 활동의 폭을 넓혀 나갔다.
후학을 양성함에 있어 그는 디자이너의 적극적인 사회 참여와 인접 분야와의 교류를 강조했다. 경영인, 광고인을 중심으로 구성된 한국광고학회의 5대 회장에 선출되고, 광고발전공로상을 수상한 것은 디자인의 활동 영역 확장과 인접 분야와의 교류 실천 노력을 인정받은 사례라 할 수 있다.
또한 그는 사회참여의 일환으로 ‘한국의 미(1979)’, ‘한국의 색(1981)’과 같은 그룹전시를 추진하였다. 이는 일제강점기와 6.25 등 혼란스러운 역사를 겪은 한국의 정체성을 디자이너들이 시각 메시지로 되짚어 보는 자리로, 이처럼 한국의 정체성을 모색하려는 노력은 이후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올림픽 관련 작업에도 반영되었다.
당시 디자이너의 사회 활동은 다양한 연합 단체를 발판으로 한층 활성화되고 있었다. 권명광은 한국시각디자인협회(KSVD, 한국그래픽디자인협회(KSGD)의 후신)을 비롯하여 한국그라픽디자인협회(KOGDA), 한국시각정보디자인협회(VIDAK), 한국디자인법인단체총연합회 회장 등을 역임하며, 디자이너의 위상을 높이고 참여를 이끌었다.
1984년 창립된 한국그라픽디자인협회는 독특한 협회전 기획으로 주목받았는데, 전시의 주제는 ‘에너지’, ‘통일’, ‘오늘’과 같은 ‘사회적 메시지’로, 시각적 표현은 ‘실험성 추구’를 기치로 하여 당대 문화예술계의 사회참여에 동참하였다.
한국시각정보디자인협회(VIDAK)를 이끌던 1997년, 그는 국제그래픽디자인협의회(Icograda) 회의를 한국에 유치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당시 부정적인 태도를 견지하던 한국디자인진흥원(KIDP)과 난상 토론을 벌인 끝에, 그는 한국시각정보디자인협회 사무총장이었던 안상수를 중심으로 하는 유치단을 우루과이 총회장에 파견하였고, 마침내 2000년 서울에서 이코그라다(Icograda) 특별 총회를 개최하는데 성공하였다. 이는 추후 한국 디자이너들의 국제적인 활동에 힘을 실어 주는 계기가 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권명광- 그래픽 디자인의 선구자 (디자이너 열전, 이수진)